김호일의 문화 칼럼

2013년 12월4일 Facebook 세 번째 이야기

김호일의 블로그 2013. 12. 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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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 갈등 원인에 대한 일고(一考)
    백종현(서울대인문대학철학과 교수)

    현대 사회 운영의 최고의 원리는 자유・평등・정의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원리는 부분적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상충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사회를 운영하고자 하면, 결국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인바, 바로 그 점에서부터 오히려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묘’를 살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운영의 이 세 가지 기본 원리의 관점에서 일견하면 이즈음 한국의 국가시민들은 ‘자유’에 대해서는 일방적이고, ‘평등’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며, ‘정의’에 대해서는 일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사회적 갈등의 원인(遠因)이라 할 수 있다.

    1. ‘자유’ 원리의 관점에서
    권리 없는 의무가 강요당하는 사회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무 수행이 동반하지 않는 권리 주장은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가시민들은 대체로 의무 이행에는 스스로 관대하고(‘적당히’ 하고) 권리 주장에는 맹렬하다(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것은 쌍방적인 사회 운영 원리인 ‘자유’에 대한 일방적인 생각의 표출이라 해야 할 것이다. —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는 그에 상응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상호 주장의 근사치를 찾아야 한다. 자기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모두 쏟아 내놓고 이를 받든지 말든지 하라고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사회에는 으레 갈등이 넘치기 마련이다. 상대방 역시 살아 있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토대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갈등 요인을 알아내, 그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따위의 발상과 발언의 기초이다. 그러니 한낱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조정이 아니라, 인품이 인간 평가의 제일 척도가 되어, 사람들이 뛰어난 인품을 갖추려고 서로 다투는 곳에서라야 사회적 갈등은 그 근원에서 해소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인품을 갖춰도 그것이 다른 사람이 인품을 갖추는 것과 상충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2. ‘평등’ 원리의 관점에서
    도대체 ‘평등(平等, aequalitas, égalité)’이 무엇인지, 무엇에서 평등인지 하는 것부터가 문제로 부상하여 논의를 난맥으로 이끌지만,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많은 이들이 평등을 주창하면서도 실은 누구도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자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의 문제가 누구나 자기는 충분히 자유롭기를 바라면서, 미처 남의 자유를 돌보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면, 평등의 문제는 왕왕 사람들이 평등 사회를 바라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은 끊임없이 타인들보다 우월한 상태에 있기를 꾀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매우 큰 빈부의 차이가 한국 사회 갈등의 주요인이라 여긴다. 여기에 어떤 이들은 시민들을 정략적으로 부자와 빈자로 편 가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킨다. 그러면서 그들은 경제적 빈부의 차이를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적 요소로 보아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면 여타 방면의 불평등 상황도 개선될 것이라 말한다. 이는 부가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으면 나머지 것들로의 접근도 비교적 용이할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빈부의 차이 못지않게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재산’의 가치가 여타의 가치들을 압도하는 사태이다.

    돈보다는 인간의 품격이 여타 가치들의 창출의 원천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라야 ‘평등’의 원칙은 ‘자유’의 원칙과 화해할 수 있어, 마침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인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인품이 뛰어나서 존경받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품이 모자라 경멸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라면 빈부 차이에 의한 갈등은 자연 완화될 것이다.

    3. ‘정의’ 원리의 관점에서
    ‘정의(正義, justitia)’는 적어도 세 겹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정의는 ‘의로움’이다. 둘째로, 정의는 ‘법(jus)’이다. 셋째로, 정의는 ‘복지(salus)’이다.

    정의(正義)의 근본은 의(義)로움에 있다. 의로움이란 “올바른 길[正路]”을 걸음이다.(孟子, 離婁章句 上 10 참조) 그런데 올바른 길의 첫걸음은 사람이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음이라 한다. 그러니까 자기 것 이상을 가지려는 욕망 즉 탐욕(pleonexia)은 불의를 낳는다. “정의는 순전히 처벌적(punitiva)인 것으로 보상적(remunerativa)인 것이 아니다. 신은 정의에 의해 처벌하며, 보상은 오로지 자비로써 하는 것이다.”(Kant, 「이성신학 강의록」: AA XXVIII, 1292) 그런 의미에서 “정의는 자비의 제한이다.”(같은 책, 1294)

    정의는 정말이지 법이다. 그런데 “인민의 복지가 최고의 법일진저(salus populi suprema lex esto).”(Cicero, De legibus, 3.3.8.) 여기서 인민의 복지란 국가시민 각자 모두의 평안한 삶의 상태를 뜻할 터이다. 밥이 없으면 법도 없고, 따라서 정의도 없음이겠다. 그러니까 국민의 복지는 국가 경제를 모든 이가 평안한 삶을 운위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는 데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불가불 국가가 ‘나의 것과 너의 것’을 조정해야 함을 함축한다.

    복지는 이를테면 경제적 정의의 표현이다. ‘소득과 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또는 일부라도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심하게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사회를 정의롭다고 볼 수 없으며, 어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 사회의 시민들 역시 정의롭다 보기 어렵다. 현저한 경제상의 불균형은 경제적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실현 또한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인간의 품격 있는 삶을 파괴한다.

    경제적 정의는 정치적 정의의 초석으로서 법적 정의 실현의 기반이자 징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적정한 소득의 분배’나 각자의 ‘자기 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국가 구성원들의 양식(良識) 있는 긴 논의와 협의를 거쳐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 우선 잠정적인 ‘합의안’을 낼 수도 있다. 그 합의안이 ‘현행의 법’이다. 사람이 만든 법은 더 좋은 합의안이 나오면 언제든 개정될 수 있다. 제정법에 절대적인 것은 없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현행의 법은 지금의 ‘정의’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법’은 언제 어디서나 준수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 갈등의 주요인 중 하나는 법정의 권위가 늘 위태위태하고, ‘자기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정의’의 세 겹의 뜻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 뜻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세 번째 뜻 주변에서만 맴도는 데에 있다.